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페르난도 비야비센시오 (문단 편집) == 생애 == 페르난도 비야비센시오는 [[1963년]] [[10월 11일]], [[에콰도르]] 알라우시에서 태어났다. 대학교는 [[콜롬비아]]에 있는 콜롬비아 협력 대학을 다녔으며 언론정보학을 전공하였다. 엘우니베르소 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했으며 [[구스타보 노보아]] 정권의 부패를 비판하는 기사를 작성하며 활동했었다. 또한, 주영국 에콰도르 대사관에 망명을 한 [[줄리언 어산지]]에 대한 기사도 작성한 이력이 존재한다. 그리고 신티아 비테리와 함께 에콰도르 정부가 이탈리아 회사를 통해 언론인과 정적들을 감시해왔다는 사실을 [[위키리크스]]에 제보했다. [[2013년]]부터는 클레베르 히메네스의 보좌관으로 일을 했고 이 당시 2010년 에콰도르 위기 때 [[라파엘 코레아]] 대통령이 무력 사용을 지시했다는 혐의를 고발했다. 이후, 명예훼손으로 18개월형을 선고받게 된다. 비야비센시오는 [[워싱턴 D.C.]]로 떠나 인터아메리카인권위원회의 도움을 요청했으나 [[에콰도르]]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체포 영장이 발부된 상황이었고 [[공소시효]]가 끝날 때까지 [[아마존]]으로 도망을 간다. 2017년 에콰도르 국회의원 선거에 국회 의원으로 출마했으나 법적 혐의가 있었던 탓에 출마가 불허되었으나 고소가 취하되어 출마를 성공했다. 그러나 선거에서는 낙마하게 된다. 이후, 명예훼손 및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었고 [[페루]]로 망명을 하며 다시 고소가 취하될 때까지 페루에서 지내게 된다. [[2018년]] 2월, 고소가 취하되었고 2021년 에콰도르 총선거에 출마해 국회의원이 된다. [[2023년]] 5월 [[기예르모 라소]] 대통령이 의회 해산을 선언하면서 국회의원직을 내려놓게 된다. [[2023년 에콰도르 대통령 선거]]에서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였다. 부정부패, 갱단, 환경 등을 중심적으로 공약을 내세우며 최근에 많아진 갱단 활동으로 인해 에콰도르는 마약 국가가 되었다고 칭하게 된다. 6월에는 환경운동가인 안드레아 곤살레스 나데르를 런닝메이트로 지명하였다. [[7월 9일]], 여론조사에 따르면 10.23%의 지지율로 4위를 기록했고 [[7월 18일]]에는 13.2%의 지지율로 1위인 [[루이사 곤살레스]] 뒤를 이은 깜짝 2위를 달성하였다. [[2023년]] [[8월 9일]], [[키토(에콰도르)|키토]] 북부에서 정치 집회가 열렸고 그곳에서 연설을 마치고 흰 트럭에 타는 순간에 여러발에 총성 소리가 들렸으며 그중 머리에 세 발의 총알을 맞으며 [[페르난도 비야비센시오 암살 사건|암살]]당한다.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사망하게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